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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모이 영화 (한글수호, 조선어학회, 민족말살)

by roiree11 2026. 5. 27.

말모이 영화 (한글수호, 조선어학회, 민족말살)
말모이 영화 (한글수호, 조선어학회, 민족말살)

 

아이가 학원에서 일제강점기를 주제로 발표를 준비하게 됐을 때, 저는 잠깐 고민했습니다. 총과 칼로 싸운 독립운동은 많이 알려져 있는데, 말과 글로 싸운 사람들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할까 하고요. 그래서 아이와 함께 영화 '말모이'를 골랐습니다. 보고 나서 아이도 저도 한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한글맞춤법 통일안, 사전이 탄생하기까지의 긴 싸움

말모이 사전 편찬 작업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일이 아닙니다. 그 뿌리는 국권이 피탈되기 전, 학자 주시경 선생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선생은 문명 강대국은 모두 자국 문자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우리말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분입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놀랐던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독립의 시작이 총이 아니라 사전이었다는 것이요.

주시경 선생이 세상을 떠난 뒤 사전 작업은 한동안 중단됐습니다. 그러다 1929년,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 108명의 위원이 모여 조선사전회를 조직하고 작업을 재개합니다. 조선어학회란 우리말의 연구와 보급을 목적으로 설립된 학술단체로, 당시로서는 그 존재 자체가 저항이었습니다.

이들이 가장 먼저 착수한 것이 한글맞춤법 통일안(1933년)입니다. 한글맞춤법 통일안이란 낱말의 표기 방식과 띄어쓰기 기준을 하나로 모은 규범으로, 사전을 만들기 위한 기초 설계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빛을'이라고 쓸지 '비츨'이라고 쓸지 통일이 안 된 상태에서는 사전 자체가 불가능했으니까요. 그 다음 단계가 표준어 제정이었는데, 600여 개의 표준어를 확정하는 데만 무려 3년이 걸렸습니다.

표준어가 정해지고 나자 이번엔 새로운 문제가 생겼습니다. 표준어에서 제외된 각 지방의 말, 즉 방언(方言)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였습니다. 방언이란 특정 지역에서 사용되는 고유한 언어 변이형을 뜻합니다. 이것들을 수록하지 않으면 사전이 완성되어도 지방 사람들은 자기 말과 표준어 사이의 다리를 찾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말모이' 운동이었습니다. 전국에 발행되던 잡지 한글에 광고를 실어 각 지역 방언을 공모한 것인데,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전국의 학생과 일반인이 자기 고장 말을 적어 편지로 보내왔고, 그 편지들이 조선어학회로 물밀 듯 쏟아졌습니다.

사전 편찬 작업이 진행된 단계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1929년 — 조선어학회 주도로 조선사전회 조직, 사전 편찬 재개
  2. 1933년 — 한글맞춤법 통일안 발표, 표기 기준 확립
  3. 1936년 — 3년간의 논의 끝에 600여 개 표준어 확정
  4. 1940년대 — 전국 방언 수집 운동 진행, 13년에 걸친 원고 작성
  5. 1947년 — 광복 이후 조선말 큰사전 1권 간행, 1957년 총 6권 완간

주시경 선생이 처음 사전 작업을 구상한 시점부터 최종 완간까지, 무려 46년이 걸린 여정입니다. 이 숫자를 들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한 세대가 온전히 바쳐야 했던 일이었다는 게 실감났습니다.

조선어학회 사건, 말을 지키다 감옥에 간 사람들

사전 편찬이 한창이던 1930년대 후반, 일제의 탄압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습니다. 일제가 내세운 정책이 민족말살정책(民族抹殺政策)입니다. 민족말살정책이란 조선인의 민족 정체성을 제도적으로 지워버리려는 식민 통치 정책으로, 내선일체(內鮮一體), 창씨개명(創氏改名), 조선어 수업 폐지 등이 그 구체적인 수단이었습니다.

내선일체란 일본과 조선은 본래 하나라는 논리로, 조선인의 언어와 역사를 일본에 흡수시키는 데 활용된 이데올로기입니다. 창씨개명이란 조선식 성명을 일본식으로 강제로 바꾸게 한 제도를 말합니다. 영화 말모이에서 아버지에게 "나 이제 김순이 아니고 가네야"라고 말하는 아이의 대사가 바로 이 장면입니다. 그 짧은 한 마디가 저는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어학회가 우리말 사전을 만들고 있다는 것은 일제 입장에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1942년, 일제는 조선어학회 회원들을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내란죄로 전격 체포합니다. 치안유지법이란 국가 체제에 반하는 단체나 활동을 처벌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으로, 당시 가장 수위 높은 형사 처벌 수단이었습니다. 이것이 조선어학회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검거된 회원 중 이윤재, 한징 두 분이 옥중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살아남은 이들도 광복이 되고 나서야 석방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총독부에 압수됐던 사전 원고는 경성역 창고에서 우연히 발견됩니다. 그 원고 묶음이 없었다면 46년의 작업이 그대로 사라질 뻔했습니다. 제가 이 장면을 아이에게 설명해 줄 때, 아이가 "원고가 없어지면 어떻게 됐어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도 그 가정을 생각하니 아찔했습니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오늘날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약 50만여 개의 표제어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 방대한 언어의 토대 중 상당 부분이 조선어학회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수집한 말들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민족 정체성, 말과 글이 사라지면 무엇이 남는가

아이와 영화를 다 보고 나서 한동안 이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독립운동을 우리는 흔히 총과 만세 운동으로만 기억하는데, 어쩌면 가장 긴 전선은 언어였을지 모릅니다. 의사와 열사들이 국토와 국가를 되찾으셨다면, 말모이를 하셨던 분들은 우리의 정체성과 근본을 지켜내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두 가지는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언어학적으로도 이 점은 명확합니다. 언어는 단순한 소통 도구가 아니라 사고의 틀이자 문화의 저장소입니다. 어떤 민족의 언어가 소멸하면 그 언어에만 담겨 있던 세계 인식 방식도 함께 사라집니다. 일제가 조선어 수업을 폐지하고 일본어만 쓰게 한 것은 단순히 불편을 주려는 게 아니었습니다. 조선인이 일본어로만 생각하고 일본어로만 꿈을 꾸게 만들려는 계획이었습니다.

유네스코(UNESCO)는 세계 소멸 위기 언어 현황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는데, 현재 전 세계에서 약 3,000개 이상의 언어가 소멸 위험에 처해 있다고 보고합니다.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이 결국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모이를 공부하면서 훨씬 더 생생하게 와닿게 됩니다.

아이는 영화를 보고 나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드신 것만큼이나 이분들이 한글을 지킨 것도 대단한 것 같아요." 제가 따로 설명해준 것도 아닌데 스스로 그 무게를 느꼈다는 게 뭉클했습니다. 그러고는 "그러면 우리도 예쁜 말 써야겠다"고 덧붙였습니다. 그 말이 솔직히 이 영화가 저한테 준 것보다 더 큰 울림이었습니다.

말모이라는 단어 자체가 순우리말로, 말을 모은다는 뜻입니다. 외래어나 줄임말이 넘쳐나는 지금, 그 단어 하나가 묘하게 마음을 건드립니다. 그분들이 목숨을 걸고 모은 말들을 우리가 어떻게 쓰고 있는지, 한 번쯤 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46년에 걸쳐 완성된 사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옥사하거나 고문을 견뎌야 했던 사람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저는 이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실감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와 함께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지금도 듭니다. 일제강점기를 주제로 공부하거나 발표를 준비하는 분들이라면, 혹은 한글날이 다가올 때 아이와 무언가를 함께 보고 싶다면 영화 말모이를 권하고 싶습니다. 총을 들지 않은 독립운동의 무게를 글자 하나하나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